[CEO창업열전] 이사·택배업체 ‘KGB’ 박해돈 회장
 2003-07-07


아무도 이를 시작이라고 보지 않았다.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이것이 바로 새로
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. 그도 그럴 것
이 이것은 우리주변에서 늘 일어나고 너무 사소한 것이라서 사람들이 눈치조차 채
지 못했던 것이다.

1977년 여름. 당시 19살이었던 박해돈 청년은 서울시 도곡동 소재 아파트입주현장에
서 이사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봤다. 그가 이곳에서 제일 먼저 목격한 것은 이삿
짐을 운반하는 사람들의 불량스러운 옷차림과 쌍소리. 이사현장 곳곳에서 아파트 주
민과 이사하는 사람들이 핏대를 올리며 싸움을 벌이는 것도 주시했다. 이사를 할 때
벌어지는 이사화물을 함부로 다루는 일과 팁 요구가 대개의 싸움 내용이었다.

이사 현장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는 점차 빛이 나기 시작했다. 희열가득 차가고 있다
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.
“ '바로 이것이다’는 생각에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습니다. 이게 나의 평생 업이 될 것
이다는 생각이 퍼뜩 들대요. 이사 서비스 질을 대폭 확대하자는 게 나의 생각이었습
니다.”
이게 시작이었다. 포장이사개념과 이사보관업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, 이사혁명을 일
으키고, 국내 최대의 이사회사가 된 KGB의 시작이었다.

그 길로 청년은 이삿짐 업체에 취직했다. 그토록 찾아다녔던 사업아이템을 찾아냈다
는 생각에 하루빨리 일을 익히고 싶었던 것이다. 어렵사리 얻은 주택공사 급사 자리
도 마다하고 서울시 천호동에 소재한 동신통운에 입사했다.

당시 이사업계는 지금과 달리 장비가 태부족, 인부들이 힘들게 이삿짐을 하나하나
옮겨야만 했다. 하루하루가 육체와의 전쟁이었다. 그러나 19살의 소년에게는 결코
힘들지 않았다. 평생 해야 할 일인데 힘들 것이 없다는 생각 뿐이었다.

일이 매일 있는 것은 아니었다. 토, 일요일 또는 휴일에 일이 몰리고, 주중에 쉬는 날
이 많았다. 일이 없으면 이삿짐 인부들은 질펀하게 잠을 자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게
일과 였지만 청년에게는 이게 영 마뜩지 않았다. 그는 하루라도 일이 없으면 몸이 근
질거렸다.

그래서 택한 것이 이사 마케킹. 주택공사를 다녔던 경험을 살려 서울시 둔촌동 주공
아파트 이사현장에 나갔다. 키를 받으러 온 입주자를 상대로 명함을 돌렸다. 명함돌
리기는 지금은 보편화된 마케팅이지만 당시에는 전혀 새로운 시도였다. 청년은 이
명함돌리기로 둔촌주공 아파트 입주민 이삿짐을 거의 독식하다시피했다.

“당시 회사 사장만 돈을 벌었지요. 인부들이야 그리 큰 돈을 벌었겠어요.”
청년에게도 소득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. 무엇보다 자신의 마케팅이 성공했다는
데 자부심을
느꼈다. 마케팅에 자신을 얻은 그는 새로운 도약을 시도한다.

1983년 그는 서울 잠실에 조그만 개인사업체를 차렸다. 이삿짐 업계에서 뒹군 지 만
4년이 넘을 무렵이었다. 이삿짐 업체는 처음부터 잘되었다. 적절한 마케팅을 구사,
끊임없이 들어오는 일거리로 청년사장은 하루한시를 쉴 틈이 없었다. 회사가 점차
커져갔다.

1986년 초 회사명을 고려통운으로 바꿨다. 당시 대기업이었던 대한통운을 고려한 사
명변경이었다. 이는 또한 대한통운을 겨냥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. 단순히 사
명만 바꾼 것은 아니었다. 그가 노린 것은 이사혁명이었다. 국내 최초로 포장이사를
도입한 것이다.

“이사업계에 뼈를 묻기로 할 때부터 구상했던 사업아이템입니다. 다른 업체와의 차
별화가 분명할 것이라는 판단에 오랫동안 고심했던 것을 구현한 것입니다.”
이는 처음부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. 소비자들이 너도나도 찾았다. 특히 전문가집단
에서의 반응이 뜨거웠다.

“포장이사는 의사 변호사 검사 교수 등 전문가나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.
이들에게 ‘이사는 우리에게 맡기고, 당신들은 자신의 일을 하라. 그게 돈을 더 버는
것이다’라는 개념을 제시, 호응을 얻었지요.”

다른 업체들도 따라왔다. 전문가 집단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도 너도나도 포장이
사를 택하는 바람에 일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.
“ 처음에는 마진이 높은 포장이사에서 이득을 많이 봤지요. 그러나 많은 업체들이 포
장이사업에 참여하면서 마진폭이 줄어들어 지금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. 그러나 포장
이사를 국내에 처음 도입, 이사문화를 한 단계 높인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.

1989년. 박 사장의 나이가 서른 살을 넘어섰다. 20대 초반에 시작한 사업이 본궤도
에 올라섰다. 이에 따라 업계에서 박 사장이 차지하는 포션도 넓어졌다. 박사장의 행
보는 항상 많은 업체들의 주시를 받았다.

박 사장은 이 시점에서 이사문화를 점차 높여나가는데 기여하기로 결심했다. 돈은
안되더라도 이사혁명을 일으키는데 일조하기 한 것이다. 그는 서울 가락동의 1층 상
가를 얻었다. 그곳에서 이사 일자가 맞지 않은 이삿짐을 보관했다. 국내 최초의 일이
다.

당시만 해도 일자가 맞지 않은 이삿짐은 몇 날이고 비닐포장지에 싸여 아파트 등지
의 잔디밭에 보관하는 것이 예사였다. 하루정도는 괜찮지만 이삼일만 지나면 쥐들
이 물어뜯고, 포장을 잘못해서 빗물이 스며들기라도 하면 보관 물건이 엉망이 되는
것은 다반사였다.

“보관업은 처음에는 적자였습니다. 비싼 상가를 얻은 게 불찰이었습니다. 지금은 서
울 근교인 광주 곤지암에 창고를 마련, 이삿짐을 보관하고 있습니다.”
다행히 이사보관업은 수 년이 지나지 않아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. 덩달아 많은 업체
들이 이업에 뛰어들었다. 박 사장은 포장이사에 이어 이사보관업을 하나의 사업아이
템으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.

1992년 박 사장은 회사명을 다시 고려골든박스로 바꾸었다. ‘고객의 이삿짐을 황금
상자처럼 소중하게 여긴다’는 서비스 정신을 담은 사명이다. 고려골든박스의 영문이
니셜인 KGB는 이후 이삿짐 업체의 대명사가 되다시피한다.

박 사장은 1995년 이후 KGB브랜드를 보급하는데 주력했다. 그의 브랜드 전략의 포
인트는 ‘고급 포장이사 서비스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.
1997년 IMF를 전후로 국내 포장이사가 가격파괴를 일삼을 때도 KGB는 고품격 포장
이사서비스를 고집, 적잖이 업계의 영향을 끼쳤다. ‘가격파괴만이 살길이다’는 당시
의 마케팅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KGB의 전략이 소비자들에 먹혀 들어갔기 때문이다.

박 사장이 이사업계 최초로 브랜드개발에 주력한 것은 사회통념에 대한 반기였다.
브랜드를 상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당시 분위기, 특히 이 사업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
는 사회인식을 바꿔보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.

“상품만 인정하는 사회풍토속에서 이사업체의 브랜드도 무형의 상품이다고 주창하
는데 무척 힘들었지요. 포장이사의 개념과 서비스 범위를 규정한 매뉴얼을 제작하
는 등 서비스 표준화에 전념, 그 결과 1999년에 포장이사와 이삿짐 보관 부문의 ISO
인증을 받았습니다.”

브랜드 개발은 사회통념을 바꾸는데만 도움을 기능을 발휘한 것은 아니다. 이를 통
해 박사장은 이삿짐업계 최초로 프랜차이즈화 할 수 있었던 것이다.
1996년부터 시작한 프랜차이즈는 가맹점만 100여 개를 넘어서는 등 이 업계에서
KGB의 위치는 공고하다. 가맹점수나 매출액, 시장점유율면에서 2위 업체와 현격한
차이를 보이고 있다.

2002년 12월 그는 새로운 이사 택배 브랜드 ‘yes2404’를 선보였다. yes2404는 1톤 탑
차를 가진 2404 소사장으로 하여금 무점포 사업을 하도록 하는 새로운 형태의 이사
서비스다. 1톤 차를 가진 세 사람의 소 사장이 한 팀이 되어 콜센터의 오더를 통해 작
업한 후 요금을 나누어 갖는 시스템이다. 소 사장들은 본사에 월20만원의 돈을 내
며, 회사는 이사업과 관련한 콜센터 운영, 홍보 등 모든 제반 사항을 제공한다.

“사장이 월급을 주는 게 아니라 소사장들이 저에게 월급을 주는 시스템입니다. 달리
말하면 피고용자가 고용주에게 월급을 준다고 보면 됩니다.”
노동조합문제로 떠들썩한 현 상황에서 이는 주목할 만한 시도로 볼 수가 있다. 박사
장이 이 제도를 도입한 것도 바로 노동조합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.

“이 제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합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.”
이러한 소사장제는 포장이사, 이삿짐보관에 이은 또 하나의 새로운 사업시스템이
다. 이사업계에서 밑바닥부터 잔뼈가 굵은 박사장만이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아
이템이기도 하다.

박 사장은 2003년 현재 이사회사 KGB를 비롯, 택배회사 KGB택배, 이삿짐전문창고
KGB안전보관, 해외이사전문회사 KGB인터내셔널 등을 운영하고 있는 종합물류회사
를 운영하고 있다. KGB일꾼만도 5000명을 헤아린다.

“대한민국 국민 1%를 책임지는 사업체를 키울 것입니다. 머슴아가 태어나서 직원가
족을 포함, 40만∼50만 명을 책임지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.”
이제는 명실공히 회장으로 불리는 박사장의 포부다. 국민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
고 경남 밀양에서 어린 시절에 상경, 국내 최대 이사업체를 일으킨 박 회장의 꿈이라
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.

그는 최근 24시간 실시간 운영하는 ‘24택배’, 용달업체인 ‘Y캡’ 등의 사업체를 설립,
새영역에 뛰어들 채비를 갖췄다. 그는 이러한 이사 택배 물류 시스템을 바탕으로 궁
극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결시키는 사업체를 만들 계획이다. 그 날이 오면 왜
곡된 유통가격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갈 것이라는 게 박 회장의 판단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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